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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경운기가 먼저 갑니다! ... 2000.07.17
  • 편집국
  • 등록 2024-04-26 16: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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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만 하더라도 아나운서가 방송을 시작하면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뉴스나 MC뿐만 아니라 현장을 취재해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리포터도 자주 했다.

문화. 예술, 지역행사보다는 민원 등 좀 깊이가 있는 시사 문제를 주로 맡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하루나 이틀 밤을 자고 오는 때도 잦았다.

생방송 고정 프로그램은 진행하고 가거나 촬영 날을 조정해 겹치지 않게 하고 떠난다.

녹화나 녹음을 하는 때도 가끔 있었다.


민원 현장이 결정되면, 다양한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취재하고, 회사로 돌아와 정리한다.

제작자와 의견을 충분하게 나눈 뒤에 PD가 영상 편집을 하면 

그 그림과 구성을 보고 글을 쓰며 방송 준비를 한다. 

그림을 맞추고 인터뷰 사이를 말로 채운다.

시작과 끝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고 현장의 생생함이나 용어 선택, 취재할 때의 뒷얘기가 

그대로 전해지도록 구성한다.

좋은 방송이 될 수 있도록 사전 준비를 정말 철저하게 하는 것이다.

작가가 대본을 써주고 그것을 소화하는 리포터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오늘 얘기의 주제는 이게 아니다.


현장 취재를 나가면 가족이 있다.

프로듀서, 카메라맨, 리포터, 도우미, 운전기사 등 여러 명이 간다.

여기에 무겁고 큰 여러 장비를 챙겨야 한다.

그래서 멀리 갈 때는 큰 차가 필요하다.

편하고도 쾌적하면 최고의 동반자다.


10여년 전에 우리 회사에 유명한 차가 한 대 있었다.

중형 승합차다.

지금의 농촌 버스와 같았는데 성능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엔진은 소형인데 차체는 중.대형 이어서 한마디로 겉만 좋았다.

힘이 없다. 언덕이나 고갯길만 나오면 가속을 못 한다.

엔진 깨지는 듯한 소리만 요란스럽다. 

도로가 좀 미끄러우면 밀어야 할 정도였다.

편의시설도 거의 없다.

히터는 있어도 작동되지 않고, 에어컨은 아예 없어서 스위치가 없다.

유리도 레버를 돌리거나 밀고 당겨야 움직이니 이 차는 봄.가을 용이라고 불렀다.


불편해도 그러려니 하고 타니 정은 많이 들었다.

왜? 그 차라도 없으면 현장 녹화를 못 나가니까!


덩치만 큰 이 차!

경사진 도로만 나오면 창피하다.

힘이 없으니 제대로 올라가지 못한다.

붕.붕.붕  ̴ 붕.붕.붕  ̴ 

한 마디로 엔진소리만 크게 나지 속도가 붙지 않는다.



삽화=이석인

그러니 지나가는 차에 손을 들어서

“먼저 가요”,“미안해요” 신호를 해야 하는데 그 일을 하는 도우미가 나였다.

그때 벌써 우리 회사에는 운전 도우미가 생겼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진천을 지나 녹화를 하러 갈 때 일이다.


지금보다 경사가 심한 진천 잣고개를 오르는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속도가 나질 않으니 앞에 있는 나는 신호수이다.

먼저 가라는 수신호를 해야 한다.


반도 못 올라갔는데 뒤에서 다른 엔진소리가 크게 들린다.

 ...털털털...떨떨떨...

시골 경운기 소리다.        

저 뒤에서 따라오던 경운기마저 우리 차를 앞지르려 다가온다.

고갯길이어서 추월하면 위반인데 정말 답답한가 보다.


밀짚모자를 쓴 아저씨가, 한 손을 들고 "미안해요"라고 외치면서 지나가지 않는가!

경운기가 자동차를 추월하는 첫 순간이었다.

그래도 웃는 모습으로 “감사합니다, 얼른 지나가시고 조심하세요” 이렇게 인사말을 건넸다.


그 아저씨는, 지금도 경운기를 운전하실까?

경운기를 트랙터로 바꾸셨겠지?

여러 생각을 한다.

속리산 말티재나 회인 피반령을 넘어가려면 꼭 멈췄다 갔으니 얘기 보따리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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