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화려한 휴가!
아내와 아들, 딸 그리고 나
가족이 모처럼 거실에 있는 큰 상에 둘러앉았다.
차 한 잔 마시면서 휴가 계획을 짜기 위해서다.
해마다 이런 절차는 있었지만 실제로 휴가를 제대로 가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이번에도 가족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입사한 지 22년!
입사 초기로 돌아가 본다.
지금이야 업무규정이 철저하고
선배들이 되도록 휴가를 다녀오라고 권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선배들의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고
프로그램 진행에 따라 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나운서 현황에 따라서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
입사한 날이 84년 1월 1일이다.
서울에서 합동 연수를 하고 본격 근무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침 교통방송인 ‘푸른 신호등’을 진행하는 행운을 안았다.
창사 때부터 이어지고 있는, 전통이 있고 인기가 높은 라디오 아침 생방송이었다.
방송은 아침 7시부터 진행됐지만 현장을 확인하며 제보를 정리하고
새로운 교통정보를 얻으려면 새벽 5시 30분 정도까지는 나가야 했다.
스튜디오에서만 진행하지 않고 현장 방송도 자주 해서 준비하는 시간이 길었다.
끝난 뒤에도 자료를 정리하고 다음 방송을 준비하려면
늦게까지 관계기관에 들러야 했고
다른 방송도 챙겨야 해서 거의 종일 회사에 있는 날이 많았다.
이 방송을 하면서부터 휴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대신 진행할 아나운서가 없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안정되게 이어 가는 게 좋겠다”
“새벽 근무자가 바뀌면 사고의 위험이 있다”
대개 이런 이유로 휴가를 가기가 쉽지 않았다.
한 사람이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궁색한 의견이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순진함과 방송에 대한 욕심이 그것을 받아들인 한 부분이 되었다.
여기에 방송 환경이 급변하면서 제때 아나운서를 뽑지 않았고
아나운서를 채용하는 제도(계약직)가 바뀌어
신입 아나운서들도 여러 이유로 그만두는 상황이 이어져
이러한 근무 여건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해가 지나면서 이런 방송 환경이 조금 나아졌다.
여자 아나운서 2명을 채용했고
남자 후배 아나운서도 연륜이 쌓여
모든 방송을 소화하며 제작까지 할 수 있게 돼 휴가 계획을 편하게 세울 수 있었다.
정말 희망의 2003년을 맞게 됐다.
그러나 기대와 행복한 기다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3년 새해, 교육이 끝나고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후배 여자 아나운서가 결혼을 발표하고 곧 외국으로 떠날 예정이란다.
물론 공표하지는 않고 책임자인 나에게만 말한 것이지만
다시 마음고생은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회사에 알리고 대책을 세워야 했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조금 더 다녀달라고 설득하는 것과 다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이었다.
이 발표가 있은 뒤 아나운서를 담당하는 나는
거의 날마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여러 가지로 신경 쓰이고 힘든 일이 이어졌다.
결국 모든 노력에도 다시 채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일을 추진했다.
이번에는 중간에 포기하는 후배가 생기지 않도록 나름대로 철저한 검증을 했다.
많지 않은 아나운서지만 서로가 격려하고 배려하면서 정말 힘들게 방송을 했다.
결국 한 사람이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진행된 기간이 3달이었다.
다시 교육하고 방송을 하기까지 최소 2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지만
선배 아나운서들이 묵묵히 지켜보며 일할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 상황에서 휴가 계획은 또 무산되고 말았다.
사정을 알고 있는 가족들은 아무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힘들어도 참고 일을 했는데 또 일이 터졌다.
겨우 교육을 끝내고 방송에 투입한 여자 아나운서 1명이
또 1년도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이다.
차 한잔 마시자며 나간 회사 로비에서 통보한 말이다.
유학까지 겨우 2달 남았단다.
이런 상황에서는 20년이 되면 주어지는 안식휴가도 갈 수 없었다.
그 휴가는 2주일 동안이어서 온 가족이 유럽에 가기로 결정했는데
그 희망마저 깨진 상황이 되었고
애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아빠가 또 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후배들의 퇴사와 입사가 반복된 2년이
나에게는 가장 길고도 힘든 세월이었다.
휴가를 거의 가지 못한 것보다
방송에 전념하지 않는 일부 후배들의 한 면과
한순간 자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방송을 생각한다는 것
또 그저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지나친 자신감에 젖어 있는 태도의 일부가
보람보다는 실망이 더 크게 자리 잡게 했다.
경쟁 체제를 갖추지 못하는 현실도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의 생활 의식이 변하는 동안
2005년도 반이 지났다.
애들이 방학해서 또다시 휴가 계획을 세웠다.
10년 넘게 저축하면서 그림만 그렸던 유럽 여행을 떠나 보고 싶다.
런던 테러 소식이 들리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
그래야 가장의 체면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하는 후배들도 수시로 격려를 해준다.
방송 걱정을 하지 말고 꼭 다녀오라고 말이다.
이제 떠나는 그날이 기다려진다.
화려한 휴가 여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