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정동진?
요즘 뉴스를 보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큰 사건.사고, 격한 언쟁, 비자금 문제 등
대부분 희망이나 용기를 주는 소식이 아니어서 답답하다.
뉴스를 해야 하는 나도 숨이 막힐 정도이다.
따뜻한 얘기, 사랑이 가득한 현장, 웃음이 함께하는 소식이 많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방송 현장에서는 가끔 웃을 수 있는 일이 생겨서 위안이 된다.
작은 실수나 재치, 출연자의 재능이 활력소가 된다.
퀴즈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입담과 춤
방송 연습을 할 때 후배들이 하는 분위기 띄우기 장기 자랑 등이
생기를 채워 준다.
방송할 때는 항상 집중하지만 조금만 풀어져도 실수한다.
원고를 놓치거나 대사를 잊고
갑작스러운 목기침이나 딸꾹질로 흐름이 끊길 때가 있다.
같이 방송한 사람이 앞이나 옆에 있는데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의 이름과 바꿔 말하는,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한 일도 생긴다.
대담이나 중계방송을 끝내고 마무리할 때
"지금까지 해설에 000, 캐스터 000였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해설자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충청북도 000를 모시고 00를 알아보았습니다"
원고에 나와 있는 데도 어쩐 일인지 출연자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녹화나 녹음이라면 다시 하겠지만, 생방송 할 때는 대책이 없다.
땀만 흘리거나 엉뚱한 사람의 이름을 등장시키고 끝낸다.
이름이 비슷한 사람이 있거나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 있을 때도 예상하지 못한 실수가 생긴다.
모래시계가 방송될 때
이 드라마 내용이나 언저리를 모르면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기저기서 '정동진'이 나왔다.
이 당시에 음악방송은 방송실 안에서는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프로듀서는 방송실 앞에서 큐 사인을 주고, 엔지니어는 순서에 맞게 장비를 조작하는
3인 체제였다.
그래서 방송을 끝낼 때 '네임 사인' 즉 스태프 이름을 소개했다.
지금까지 제작: 정동진, 기술: 000, 진행에 000였습니다.
멋지게 끝나고 나와 인사를 건네는데 분위기는 썰렁하다.
'정진동'을 '정동진'으로 소개했다.
사람이 지역으로 바뀐 것이다.
기술국에 '김동진', '김신동' 선배가 있다.
두 분을 소개할 때도 후배들의 실수가 잦다.
한 자씩 바꿔서 "지금까지 기술에 '김동신','김진동'이었습니다."로 하는 것이다.
지금도 입사한 지 2.3년 지난 아나운서나 진행자가 이렇게 할 때가 있다.
물론 그냥 웃고 넘어간다. 본인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같이 일한 지 20년 가까이 되니 내 이름 때문에
후배가 실수한 때가 있었다.
충북지방경찰청에 '최남수'경찰청장이 부임하자
며칠 동안 관련한 뉴스가 나갔다.
담당 기자가 '최남식 경찰청장은 오늘 괴산에서...', 이렇게 기사를 썼다.
이 원고를 입사한 지 오래되지 않은 후배 아나운서가
고치지 않고 그냥 읽었다.
뉴스가 끝낸 뒤에 내가 졸지에 아나운서가 아니라 경찰청장이 되었다.
웃으면서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서 자주 어려움을 겪는 후배가 있었다.
'송성천' 아나운서였다.
여자 아나운서다.
'송성천이었습니다'를 발음해 보자.
빨리하면 대개 얼버무리는 소리가 나온다.
본인도 힘들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하는데 다른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더듬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방송할 때마다 다른 진행자를 긴장하게 했고 그로 인해 자주 잔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내 아내이다.
요즘 방송을 볼 때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신입 아나운서나 기자를 보면, 괜히 긴장되기도 하고 웃음도 나온다.
방송을 제대로 한 번 하기 위해서 얼마나 떨고 있을까를 알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고속도로 상황을 전하면서
원고를 떨어트려 놀라고 더듬거리는 기자를 보았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잠깐의 실수를 보면서라도 웃고 싶다.
너털웃음은 아니더라도 미소라도 짓고 싶다.
나무라지 않고 “오늘 방송 생동감 있었어, 멋지게 나가던데...”
이렇게 격려하며 차 한 잔 나누면, 머지않아 능력 있는 방송인으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