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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고마운 친구, 전자시계!
  • 편집국
  • 등록 2024-07-06 14: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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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고마운 친구, 전자시계!


방송은 긴장의 연속이다.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초로 시작해서 초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고로 연결된다.


방송을 시작하면 생활환경이 달라진다.

교육을 마치고 자기 방송을 맡게 되면 

출퇴근 시간은 그 시간에 따르게 된다.

긴장의 정도도 시간대에 따라 달라진다.


아침 7시 뉴스를 맡는다면 

출근 시간은 오전 6시가 되고 이로부터 8시간을 따져 오후 3시에 퇴근한다.

이것은 기본이고, 후에 다른 일이 있다면 모두 끝내고 퇴근한다.


손목 전자시계 얘기는 방송사에 들어온 후 3달 뒤부터 시작된다.

입사 때는 아나운서도 숙직이 있었다.

3-4교대로 돌아가며 시간표에 따라 근무했다.

숙직하는 날은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모든 방송을 책임져야 한다.


콜사인, 시각 고지, 뉴스에 이어 방송이 끝나니 안녕히 주무시라는 밤 인사부터

새벽 5시 방송을 시작한다는 아침 인사까지 모두 한 사람(숙직자) 몫이다.


갑자기 생활이 바뀌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야 하니 익숙하지 않다.

걱정이다.

물론 숙직자 서로가 신경 쓰고 배려하지만 준비는 스스로 해야 한다.


그래서 준비한 게 전자손목시계였다.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이고 깨우는 기능까지 있어서 필수품이다.

작은 시계였지만 소리가 크고 정확해서 믿음직한 동반자였다.

이때까지는 시계가 한 개였다.


그로부터 1년 4개월 후 

아침에 가장 먼저 생방송 하는 ‘푸른신호등’을 맡게 되었다.

아침 7시 뉴스가 끝나고 이어지니 지금까지의 일상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날마다 숙직하는 기분이다.

누가 깨워주지도 않고 회사까지 바래다주지도 않는다.

내가 해내야 한다.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누가 도와주지도 않는다.


이미지=픽스베이

다른 방법이 없어 시계를 샀다.

크기와 알람 소리까지 다른 걸로 3개를 사서

20분씩 빠르게, 5분씩 차가 나게 알람을 맞춰 놓았다.

정상 가동에 들어가기 전에 시험 작동을 수십 번 했다.

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전화 특수 서비스, 모닝콜까지 신청했다.



그러니까 미리 일어나 해제해 놓지 않으면, 

4시 10분, 전화벨 소리를 시작으로 계속 울린다.

일어날 수밖에 없다.

벨 소리에 이웃이 잠을 깰까봐 여름에도 문을 닫고 잤다.

다행이 대부분 1차에 일어나 다른 시계와 전화는 바로 해제하니 소음은 이어지지 않았다.


몇 년을 그렇게 잘 지내왔음에도 제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는 무거운 생각은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전화와 시계 소리가 아닌 자동차 경보기 소리, 오토바이 엔진소리

심지어 김치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에도 잠을 깨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르다.

내 자신이 시계다.

정확하게 그 시각이면 눈을 뜬다.

기상 시간을 다르게 시계와 전화를 맞춰 놓고 자지만 항상 내가 먼저다.


나에게는 가보가 있다.

전자시계다.

그것도 여러 개다.

10여 년을 모았으니까...


그중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지금도 차고 있는 "돌핀" 전자시계다.

결혼 예물이기 때문이다.

준비하러 갔을 때, 처가 식구를 놀라게 했던 그 시계다.


좋은 시계 다 놔두고 25,000원짜리를 골랐으니 놀랄 수밖에!

그러나 그 깊은 뜻을 잘 설명해 칭찬을 들었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계는 잘 간다.

그리고 정확하다.

하루에 두 번만 맞추면 천문대 시계다.

그러니 가보가 아닌가.


지금도 방과 회사 책상 서랍에 놓여 있는 전자손목시계

나의 절친이다.

보고만 있어도 얼굴에 미소가 절로 머문다.


시계는 변함이 없다. 

욕심도 없다, 

보채지도 않는다, 

잘 난 척도 안 한다.


그러니 영원한 동반자요 가보(家寶)다.

오늘도 시계를 닦아 본다.

선명하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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