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7. 다시 인사드립니다~
  • 편집국
  • 등록 2024-04-03 14:01:54

기사수정

7. 다시 인사드립니다~


              -2000.7.24.-



항상 긴장하는 생방송, 그 끝은 언제나 가볍다. 방송이 신나니 정말 유쾌하다.


점심을 먹고, 정원에서 휴식을 즐긴다.

등나무 그늘 밑에 있는 긴 나무 의자에서 연못 분수를 바라본다.

분수 옆 바위에 올라앉아 있는 남생이, 자라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물거북이다.

정말 느리지만 눈치는 엄청 빠르다.

옆에만 가도 바로 다이빙, 참 미안하다.

올라올 때는 힘들어하니까?


물줄기를 보며 시간을 좀 되돌려 본다.


지난 6월 중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돼서

세계로 긴급 뉴스가 타전된다.


사흘 동안의 세세한 움직임이 세계의 눈 속에 비친다.

공동선언문의 속보가 이어지고 관련된 또 다른 뉴스가 예고된다.


드디어 대통령이 돌아오는 날.

역시 방송도 긴급 편성됐다.


오후 3시 20분쯤부터 평양공항에서의 환송식 실황중계다.

즐거운 오후 3시를 진행하지 못하고

방송 용어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즐거운 오후 3시’는 서울에서 방송하는 내용을 끊고 청주에서 방송한다.

즉 ‘로컬 방송’ 시간대다.


위성 중계를 보고 있다가 

서울에서 방송이 시작되면 바로 끊고 그대로 받아 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릴레이’다.



긴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기다림이 이어진다.

노래자랑은 하지 못하고 방송 예고와 프로그램 설명만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애들립’이다.

말 그대로 침이 마르는 순간이다.

정확하게 중계방송 시작을 맞춰야 한다.


드디어 3시 25분쯤 중계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긴박하게 들어온다.

"네, 예고해 드린 대로 정상회담에 대한 뉴스와 환송식 실황중계를 위해서 

즐거운 오후 3시는 여기서 마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휴, 잘 이어졌구나 하고 방송실 문을 여는 순간에

긴급상황이 발생했다.

아직 공항에 두 정상이 도착하지 않아서 환송식이 지연된 것이다.

아예 지역방송 시간인 3시부터 중계가 편성됐으면 문제가 없는데

3시 20분부터 서울 방송을 받으라는 편성 연락을 받았기에 긴박함이 이어진 상황이다.

나가다 다시 들어와 앉자마자 방송 신호가 들어온다.

아무것도 준비해 놓은 게 없다.

하지만 방송은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다시 인사드립니다.

노래자랑을 진행하러 온 게 아니라, 환송식이 늦어져서, 시작될 때까지 현장 상황을 

알려드리려고 방송실에 앉았습니다.”

입으로 말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방송실 안에 있는 텔레비전에 손이 간다.


수신 장치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다른 방송은 보이지 않아도 

바로 위층이 TV 주조정실이니 MBC는 보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 모니터는, 노래자랑 할 때 노랫말을 보여주는 것이지 

시청용은 아니어서 긴장감은 아주 높아졌다.

안테나조차도 연결돼 있지 않은 모니터다.


다행히 MBC-TV 화면이 아주 희미하게 보인다.

내가 자랑하는 2.0 시력으로 볼 수 있을 정도다.

이제는 날개를 달았다.


평양공항의 준비 상황 그림이 설명 없이 들어온다.


이제부터는 순발력이다.

보이는 모든 장면을 어제까지의 뉴스 상식에 섞어 이어갈 수밖에 없다.

스포츠 중계방송과 같은 환경이다.


긴장은 몇 배로 증가!

말 한마디에 방송 경력 15년이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흘러갔다.


계획도 없고 각본도 없는 시간이 흐르고

이마엔 땀이 흐른다.

4시가 돼서 방송을 서울로 넘기기까지 35분!


"안녕하십니까, 안녕히 계십시오, 다시 인사드립니다"

이 말을 여러 번 한 그날 방송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회담도, 방송도 잘 됐으니 웃으며 방송실을 나왔다.


삽화=이석인

남생이가 다시 물기를 말린다.

여전히 긴장해 고개를 빠르게 움직여 주위를 살핀다.

내가 자리를 떠야 편안하게 볕을 쬘 것이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뉴스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